거벽(Big Wall)등반

2011 Yosemite Elcap Zodiac 등반기

네발의 행복 2015. 8. 31.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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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Yosemite Elcap Zodiac 등반기

글 - 이 충 호

익스트림 라이더 등산학교 동문회(회장 우헌기)에서는 2년 전부터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에서 하계 요세미티 캠프를 개최함으로써 익스트림 라이더 동문들에게 실제로 거벽등반의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금년도 예외 없이 세 번째로 5개 팀 18명이 이 프로그램에 참가의사를 밝힌 바 있다.

이 프로그램 계획이 발표되고 며칠 후 정호에게서 전화가 왔다. “형님, 이번 요세미티에 우리 양띠들끼리 참가할까 하는데 형님도 양띠시니까 같이 갑시다.”

나는 2년 전 캠프 첫 회에 겁도 없이 멋도 모르고 앨 캐피탄 조디악 코스에 붙었다가 3피치에서 후퇴한 적이 있어 약간 아쉬운 점은 있었으나, 내 등반실력으로는 너무도 큰 거벽이라 큰 미련은 없었다. 그런데 또 후배의 전화를 받고 약간 마음이 동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내 등반실력이래 봤자 익스트림 라이더 등산학교에서 18기로 빅월 기초교육을 받았지만,
졸업 일주일 후 졸업생 합동등반 때 설악산 미륵장군봉에서 생애 처음 선등으로 짧고 쉬운 코스를 오르다 같은 장소에서 세 번 추락하면서 5시간 만에 간신히 한 코스를 등반한 것이 전부였다.

그 후 실전등반을 할 기회가 별로 없었던 것은 마침 그 다음 달에 한국산악회에서 기획하고 주관한 2007 한국 에베레스트 실버 원정대 모집공고가 있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응모원서를 낸 것이 정말 운 좋게 최종 원정대원으로 합격하는 행운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실버원정대와 함께 매 주말이면 국내 여러 산에서 합동훈련을 했고,
네팔 임자체에서 고소적응훈련을 포함해 그 다음 해 본 원정까지 근 1년을 실버원정대와 함께 행동했기 때문에,
인공등반은 별로 해볼 기회가 없었다. 실버원정대가 끝난 후에도 선등으로서의 짜릿한 맛을 즐길 배짱도 없고, 매번 후등으로 무한정 기다리는 인공등반에 맛을 들이지 못해 주로 인수봉에서 자유등반을 즐기고 있었다.

 



자유등반이라고 해 봤자 빌라길 같이 좀 아리까리한 데서는 앞에 있는 퀵드로는 보이는 대로 잡고 볼트는 당연히 밟고 반칙을 밥 먹듯이 하면서 핑계는 “내 나이에 선수될 것도 아니고 잘못 하다가 발목이라도 부러뜨리면 이마저도 즐기지 못하고 목발 짚고 절뚝거리면서 다녀야 하니 그 꼴 보기 좋겠냐?” 하면서 자위하곤 하던 터였다.

 



이런 내 실력을 뻔히 아는 후배들이 2년 전의 내 아쉬움을 풀어주려고 그 힘든 엘 캡 등반에 동참시켜 주겠다고 하니 그저 감격할 뿐이었다.

 

나는 이런 후배들의 고마운 배려를 받아들여 함께 동참하기로 결심하고,
그날로부터 술, 담배는 딱 끊고, 일년 전부터 줄곧 해오던 실내 인공암장 운동도 더 열심히 하고, 추가로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양재천에서 5킬로미터씩 조깅도 하면서 팀에서 폭탄이 안되려고 개인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우리 팀의 대원으로는 이충호(ER 18기, 69세), 윤정호(21기, 57세), 안동준(21기, 57세), 김주회(14기, 57세), 강대인(21기, 45세),

이렇게 다른 팀에 비해 비교적 고령인 5명의 양띠들로 구성했고, 원정대 이름은 대원 모두가 양띠인 이유로 <오양의 외출>이라 지었다.

약간은 외설스럽기도 하고, 전라도 말로 좀 거시기 하기도 하지만 유머스럽기도 한 게 입에 착 달라붙었다.

 

대장은 중학교 때부터 암벽등반을 해오던 경험이 풍부하고 매사 신중하고 침착한 성격의 정호를 대장으로 추대하기로 만장일치로 의견을 모았다.

 


6월 6일 (제 1 일)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예정시간보다 약 1시간 일찍 도착했다.
이번 요세미티 캠프에서 동문회 차량지원과 매니저 역할을 하기로 한 강인철 학술이사가 안 보인다. 전화를 해 보니 우리가 있는 곳은 3층 도착장인데 2층에서 3층으로 올라오는 입구를 못 찾아서 몇 바퀴째 돌고 있는 중이란다.
조금 후에 강이사가 100kg이나 되는 육중한 몸으로 씩씩대면서 나타난다.
우리는 쇠장비며 포타렛지 등등 많은 집을 차에 싣고 당연한 것처럼 REI 장비점으로 향한다.

우리 바위하는 사람들은 평소에도 특별히 살 것도 없으면서 종로 5가 장비점 골목을 어슬렁거리다가 문형이가 운영하는 마운틴 기어에 들어가 괜히 이것저것 만져만 보고 커피만 축내고 하는 것이 평소의 습관이었다.
REI는 명성에 걸맞게 매장이 상당히 크고 물건도 다양하게 많이 구비되어 있으나 값은 우리나라와 비교해서 그리 싼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우리나라가 더 싼 것도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길이가 좀 길고 가느다란 와이어 행거인데 그것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것이 필요한 이유는, 서양애들은 우리보다 키도 클 뿐만 아니라 팔 길이도 훨씬 길어서 우리는 레더 1단에 바둥바둥 올라서도 다음 번 리벳에 닿을까 말까 하기 때문이었다.
또 굵기가 우리가 평소에 쓰던 것보다 좀 가늘어야 엘 캡에서 사용하기가 편하기 때문이었다.

동양인들의 키를 감안해서 우리도 비장의 치터스틱을 가져오긴 했지만, 치터스틱을 쓰면 서양애들이 좀 하수로 본다나 뭐라나?

내 생각으로는 어차피 인공등반인데 좀 더 안전하고 편리한 도구를 쓰는 것이 뭐가 어때서...

두 번째로는 한인 슈퍼에 들러서 우리가 올 때 목록을 작성해 온대로 부식을 사는 일이다. 한인 슈퍼는 우리나라 여느 슈퍼마켓에 온 착각이 들 정도로 모든 것이 우리나라 슈퍼와 똑같다.

그 다음으로는 한인식당에 들러 곰탕으로 늦은 점심을 하면서 소주도 한 잔씩 기울인다.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다. 요세미티로 출발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요세미티까지는 약 4시간 정도 걸리는데 요세미티에 도착하니 오후 6시쯤 됐다.

우선 오늘 숙소가 문제다. 요세미티에는 캠핑장이 여러 곳 있으나 모두 사전예약제이고 오직 캠프4만 선착순이다.

캠프4는 아침 일찍 마감되는 것을 익히 알고 있는 우리는 다른 캠핑장을 찾아 다녀본다.

마침 하우스키핑 캠핑장이 몇 자리 남아있단다. 그런데 하루 숙박비가 100불이란다. 워메… 이게 소주가 몇 병인데…

내일 새벽 4시쯤 캠프4에 선착순으로 줄 설 것을 생각한다면 몇 시간 그저 적당히 어느 숲 속에서 비박해도 그만이지만, 우리는 한국인의 긍지로서 점잖지 못한 행동은 안 하기로 하고 아까운 100불을 내고 하우스키핑에서 요세미티의 첫날 밤을 보내기로 한다.

이곳은 내가 2년 전에 왔을 때 식량을 넣어두었던 홀백을 가운데 두고 요세미티 곰과 약 3m 거리에서 눈싸움을 했던 추억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6월 7일 (제 2 일)

새벽 4시에 일찍 일어나 캠프4로 야영허가를 받으러 간다.

레인저 사무실 앞에는 아직 아무도 없고 우리가 첫 번째다.

조금 있으니 서양애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모두 차림새가 후줄근한 게 호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클라이머들인가 보다. 어떤 녀석들은 아예 매트리스를 깔고 침낭을 덮고 잠을 청한다.

또 어떤 녀석들은 버너를 켜더니 계란을 스크램블해서 빵에 얹어서 우적우적 먹는다. 옆사람에게 빈말이라도 먹어보라는 말도 없다. 참 편리한 식사문화다.

조금 후 8시 30분에 레인저가 출근해서 허가증을 발급하기 시작한다.

영어가 유창한 동준이하고 뭐라고 뭐라고 하더니 나를 쳐다보고는 나를 기억한다고 한다. 나도 그녀가 기억난다.

나이가 좀 든 키 큰 여자 레인저로 2년 전 그때도 야영허가서를 제출했더니, 내 나이를 보고 그랬는지 내가 미남이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씩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든 적이 있었다. 아마 그때를 기억하는 것 같다. 나도 미국애들처럼 어깨를 위로 들썩거리면서 웃는 낯으로 “아이 리멤버 유 투” 라고 하버드식 발음으로 응대해 줬다.

이제 야영허가서도 받았으니 우리 지정장소에 가서 텐트도 치고 짐도 정리한 다음에 여유를 좀 가져본다. 오랜만에 맛있는 커피도 한잔 한다.

오후에는 엘 캡 전경이 보이는 유일한 장소인 우리가 평소 언더 브릿지라고 부르는 엘 캡 브릿지로 정찰을 하러 나갔다.

우리는 이번 엘 캡 원정을 조디악 코스로 정했었는데 만약 조디악 코스가 밀려서 등반이 순조롭지 못할 것 같으면 제냐타 몬다타로 바꾸기로 하고 두 코스 모두 준비해 둔 상태였다.

마침 우리와 친근한 사이인 톰 아저씨도 있어서 반갑게 인사했다. 톰 에반스라는 분은 예전에는 엘 캡 로컬 클라이머였으나 이제는 나이 들어 클라이밍은 못하고 엘 캡을 등반하는 등반대에게 망원렌즈로 사진도 찍어주고 그것을 CD로 만들어서 판매하면서 이라는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전세계 클라이머들에게 엘 캡의 날씨 등 여러 정보를 알려주는 분이기도 하다.

우리가 오르기로 한 조디악 코스를 망원경으로 자세히 살펴본다.

4피치에 홀백 두 개가 매달려 있는데 사람은 안 보인다. 또 그 위 10피치 쯤에 어느 한 팀이 등반 중이다. 10피치에 있는 팀들은 신경쓸 것 없고 4피치에 홀링해 둔 팀은 내려와서 휴식을 취하고 있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것은 홀백만 있지 로프가 안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그때까지도 특별한 점은 느끼지 못하고 우리가 등반을 시작할 때에는 쟤들하고 5,6 피치 차이가 날 테니 우리 등반에는 별 지장이 없겠다 하고 베이스캠프로 돌아왔다.

새벽부터 야영허가서 때문에 잠도 푹 자지 못했고 또 시차적응도 아직 안된 상태라 좀 피곤하다.

대장은 우리 대원들의 컨디션을 감안하여 내일 하루 더 휴식일로 하기로 결정한다. 내일부터 등반 시작이라면 긴장해서 술도 못 마시겠지만 휴식일이 된 덕에 저녁에 보드카에 맥주를 말아서 기분 좋게 좀 과음을 했다

 


6월 8일 (제 3 일)

내일부터 본격적인 등반 시작이다. 서서히 긴장감이 감돈다.

오전에는 타프를 펼쳐놓고 장비를 모두 꺼내서 하나하나 재점검한다. 장비는 이상이 없다.

그 다음 식량을 포장하기 시작한다. 벽에 매달려서 행동하기 편리하게 지퍼백에다 날짜별로 또 아침, 행동식, 저녁 이렇게 나누어서 매직펜으로 표시해둔다. 우리 식량은 아침에는 유병장 1개, 행동식은 후르츠 칵테일, 초콜릿, 파워바 1개씩, 사탕 3개가 전부다. 저녁은 또 유병장.

제일 중요한 것은 물인데 물은 한 사람에 하루 2리터로 계산했다. 1인당 2리터씩 5명이면 10리터, 등반일수 4일에 예비일 1일 합해서 5일로 계산해서 50리터. 물 무게만 50kg인 셈이다.

대인이는 이런 식량포장 작업이 끝난 후에도 쉴새 없이 또 뭔가를 만들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샌프란시스코 REI 장비점에서 구하지 못한 길이가 긴 와이어 행거를 이곳 요세미티 빌리지 장비점에서 2개를 구했는데, 굵기가 가늘다 보니 빳빳하지가 못하고 흐늘흐늘해서 빈 맥주캔을 가위로 잘라서 돌돌 말아서 꼿꼿하게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참 손재주도 좋다.

대인이는 우리 팀의 막내이기는 하지만 등반실력은 자타가 공인하는 거벽등반의 톱 클래스 실력자다. 작년 가을 마운틴 하드웨어 익스트림 라이더 빅월 페스트벌에서 당당히 우승했고, 금년 봄 서울시연맹 주최 네파컵 익스트림 대회에서 또 우승함으로써 거벽등반 좀 한다는 사람은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인사이기도 하다. 작년에 이곳 엘 캡의 뉴 돈 코스를 완등한 바 있고 또 올해에도 사실은 제냐타 몬다타 코스를 단독등반하기로 계획했었는데, 같은 양띠라는 이유만으로 우리 팀에 코가 꿴 우리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하지만 우리 “오양의 외출” 팀이 대인이의 힘을 빌어 조디악을 등반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55년생 양띠들 3명(정호, 동준, 주회)이 돌아가면서 선등을 서기로 약속했고 대인이는 백업맨으로 팀이 슬럼프에 빠졌을 때 구원투수로 나서기로 한 것이다.

정호, 동준, 주회 역시 모두 요세미티에서 등반을 해본 적이 있는데, 정호와 동준은 2년 전에 텐저린 트립 코스를 완등했고, 주회는 금년 2월 겨울에 미국 로컬 클라이머들도 두려워하는 동계 하프돔을 완등했을 정도로 숨은 실력자들인 것이다.

팀웍 또한 55년생 양띠들 세 명은 평소에도 같이 붙어다니는 술친구들이요, 자일 파트너였고, 정호, 동준, 대인은 ER 21기 동기로 평소에도 동기모임이나 동기 합동산행 때 항상 같이 행동하는 사이인지라 서로가 등반실력이나 성격, 습관, 술버릇까지 훤히 알고 있는 완벽한 팀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이런 원정대에 나 같은 나이 먹은 놈이 합류할 수 있었다는 것은 큰 행운이었다.

 


6월 9일 (제 4 일, 등반 첫째 날)

우리는 전날 작전계획을 세우면서 당일에 모든 짐을 올려서 4피치에서 1박하고 휴식일 없이 그냥 치고 오르기로 했다. 그 이유는, 우리가 휴식을 취하는 동안 다른 팀이 우리를 앞질러서 우리 앞에서 어기적거리면 등반에 차질이 올까 염려해서이기도 했고, 그 지겨운 어프로치 구간 너덜지대를 또 걸어야 한다는 점, 그리고 4피치까지 허공에서 저깅을 하느라 체력소모가 많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기도 했다.

우리 대원은 5명이니까 한 명은 선등, 또 한 명은 빌레이, 나머지 3명은 선등자가 등반하는 동안 두 번에 나누어 짐을 모두 올리기로 했다. 그야말로 인해전술인 것이다.

새벽 4시에 기상했다. 어제 저녁에 미리 준비해 둔 누룽지로 든든하게 아침을 먹어둔다. 다른 텐트에 지장을 줄까봐 조용조용하게 행동한다. 야간전투에 출전하듯이 가벼운 긴장감이 감돈다.

이때 강인철 이사가 나를 조용히 옆으로 부른다. “형, 이번 등반하면서 형 나이 많다고 동생들에게 잔소리하지 말고 동생들 말 잘 듣고 체력안배만 잘 해요. 형도 잘 알다시피 얘네들도 한가닥 하는 애들이잖아요” 하면서 신신당부를 한다.

하모 하모… 선배는 하늘이요 부모와 동격이다 하고 주절대면서 한밤중에 후배들 빠따치고 술 심부름시키고 하던 것은 쌍팔년도에나 통했던 일이지 요즘 세상에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 선배는 앞에 가는 배요 후배는 뒤에 오는 배인데, 앞에 가는 선배는 엔진도 구형인데다가 오래되고 낡아서 비실비실하지만 뒤에 오는 후배는 성능 좋은 엔진을 장착해서 선배 추월하는 것은 식은죽 먹기, 세상만사가 다 그런 것 아닌가?
우리나라 바둑계의 거목 조훈현 9단이 이창호를 유일하게 제자로 삼고 얼마 후 이창호 9단이 응씨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고 세계를 제패했을 때, 자신이 세계를 제패했을 때보다도 더 기뻤다고 술회하지 않았던가? 하물며 이번 등반에서 나의 생명줄이요 기둥인 동생들인데 잔소리는 무슨 잔소리…. 언감생심.

엘 캡 조디악 코스의 첫 선등의 영예는 동준이가 맡기로 했다. 전날 작전회의 때 본인이 강력하게 희망했기 때문이다.

동준이가 하네스를 차고 필요한 장비를 모두 점검한 다음 비장한 표정으로 출발준비 완료를 알린다. 우리는 모두 둥그렇게 모여 손을 앞으로 내밀어 겹겹이 포갠 다음 “파이팅”을 크게 외치며 안전등반, 성공등반을 다짐했다.

동준이가 첫 볼트에 레더를 걸고 확보줄을 당기는 것을 보며 우리는 다시 “안동준 파이팅”, “ER 힘!”을 외치며 동준이를 응원했다.

강인철 이사가 우리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준다고 이곳까지 동행했기에 동준이 빌레이는 그에게 맡기고 나머지 4명은 남겨놓고 온 물과 식량을 마저 올리기 위해 주차해 놓은 곳까지 다시 내려간다. 주차장에서부터 벽 밑까지는 약 1시간 20분쯤 걸리는데 악명 높은 가파른 너덜지대이다. 눈으로는 저 앞의 벽이 빤히 보이는데도 약 30kg의 짐을 지고 가파른 너덜지대를 두 번씩이나 오르자니 아침부터 등반시작도 하기 전에 힘이 빠진다.

벽 밑에 거의 도착할 때쯤 무전기가 울린다. 강인철 이사의 목소리다. “동준이 등반속도가 무척 빠른데, 참 대단해” 하고 알려준다. 우리가 벽에 도착했을 때 동준이는 이미 1피치를 끝내고 곧바로 2피치로 진입 중이었다.

조디악 코스는 루트맵에서 보면, 기존 코스는 출발지점으로부터 왼쪽 크랙을 올라 120피트 위의 오버행 천장에서 1피치를 끊고 오른쪽으로 약 7, 8m 트레버스해서 오버행 턱을 넘어 70피트 위에서 2피치를 종료하게 되어 있으나, 우리는 출발지점부터 곧바로 위로 뻗은 실크랙으로 2피치까지 한번에 오르는 새로운 루트를 선택하였다.

조금 지나니 동준에게서 큰 목소리로 “완료”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자유등반이건 인공등반이건 선등자가 좀 까다로운 크럭스 부분을 쉽게 가볍게 통과하면 후등자들도 겁없이 크럭스 부분을 넘게 되지만, 선등자가 머뭇머뭇거리며 힘겹게 등반하면 후등자들도 괜히 쫄아서 덜덜덜 오토바이를 타게 마련이다. 동준이는 내가 알기로는 평소에 1시간 등반하면 3시간 술 먹는 줄 알았는데, 내가 잘못 본건지 아니면 이번 원정에 대비해서 남몰래 1시간에 100만 원짜리 족집게 과외를 한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우리는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서로 낄낄거리며 농담도 주고받고 마치 한국의 어느 산에서 즐기는 등반을 하듯이 분위기가 희희낙낙이다.

두 번째 주자는 정호다. 55년생 양띠들이 돌아가면서 선등하기로 한 약속에 따라 3피치는 정호의 차례였기 때문에 먼저 회수를 하면서 올라간다. 회수자가 회수한 장비를 그대로 차고 다음 피치를 선등함으로써 등반시간을 줄이기 위함이다.

이번 등반에 우리의 시스템은 선등자가 다이내믹 로프로 줄을 깔고 올라가면서 저깅용 줄을 뒤에 달고 올라서 확보지점에 두 줄을 픽스하면 두 번째로 회수자가 출발, 세 번째 등반자도 홀링줄을 뒤에 달고 동시에 출발, 확보지점에 도착과 동시에 홀링시스템 구축, 홀링 준비, 그러면 네 번째 등반자가 예비용 저깅줄을 뒤에 달고 출발, 확보지점에 도착하면 세 번째 등반자와 네 번째 등반자가 함께 1:1 시스템으로 홀링 시작, 라스트는 홀백을 띄우고 모든 뒷정리를 한 후 홀백과 함께 오르며 홀백이 바위턱에 걸렸을 땐 발로 걷어차서 바위벽에서 홀백을 띄워주는 것을 기본으로 하되 경우에 따라서는 그때 그때 임기응변을 하기로 했었다.

나는 네 번째 주자로 저깅줄에 주마를 끼우고 저깅을 시작한다. 스테틱 로프이긴 하지만 완전히 오버행 허공에 매달려 있으니까 힘을 줄 때마다 출렁거린다. 3피치까지는 와본 적이 있으니까 바위들이 눈에 선하고 추억도 새롭고 아직은 고도감도 특별히 느끼지 못한다.

 

아침 일찍부터 짐을 두 번씩이나 끌어 올리느라고 힘을 좀 빼기는 했지만 아직은 그런대로 저깅을 할 만하다. 가끔씩 쉬어가며 저 밑에 언더브릿지도 보고 혹시 곰들이 없나 하고 밑의 숲도 살펴본다.
대원 전원이 3피치까지 도착했다.

그런데 그 전날 매달려있던 홀백 2개가 아직도 4피치에 그대로 매달려있다. 어떤 시키들이 가려면 가고 못 갈 거면 빨리 내려갈 것이지 며칠씩 매달아놓고 지랄이야! 개시키들….하며 우리는 불평을 했다.

우리는 하는 수없이 대인이가 4피치까지 가서 포타렛지를 치고 1박 할 수 있는지를 정찰하기로 했다. 3피치에서 4피치는 좌향크랙으로 약간의 자유등반을 겸해서 하는 코스이므로 대인이는 빠른 속도로 4피치에 도착하더니 “끊어진 로프하고 홀백이 있어서 포타렛지 설치가 좀 그러네요”라고 응답한다. 대인이는 4피치에 줄을 고정시킨 후 곧바로 3피치로 돌아왔다. 대장은 그렇다면 3피치에서 그냥 1박 하고 내일 그들을 추월해서 오르기로 하고 포타렛지 설치를 결정했다.

포타렛지 설치가 끝나고 침낭을 펼치려는데 아뿔싸! 저 위에서부터 떨어지는 낙수가 바람이 불면 고스란히 우리 머리 위로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순식간에 흠뻑 젖었다.

대장은 이런 상태로는 도저히 이곳에서 1박 할 수 없으므로 베이스캠프로 철수를 결정한다. 이곳 3피치까지 너덜지대를 오르고 또 힘들게 저깅한 것이 무척 아깝다.

 

6월 10일 (제 5 일, 휴식일)

어제 짐을 두 번씩이나 벽 밑까지 올리고 3피치까지 등반하느라 좀 피곤하다.
오늘은 하루 쉬면서 몸을 재충전하기로 했다. 엘 캡 등반 안내서에도 첫날 장비를 3피치에 데포시키고 하루 휴식한 후 다음 날 물과 식량을 올리고
본격적으로 등반을 시작하는 것으로 나와 있는데 역시 그렇게 하는 것이 큰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우리가 대원 숫자만 믿고 좀 의욕을 부렸나 보다.

느지막이 일어났다. 아침 겸 점심으로 두꺼운 스테이크를 든든하게 먹어둔다. 오후에는 또 엘 캡 브릿지로 정찰을 하러 간다. 그런데 어제까지 4피치에 걸려있던 홀백이 사라지고 안 보인다. 그때서야 톰 아저씨가 그 이유를 설명해 준다.

우리의 등반시작 3일 전 미국팀 2명이 조디악을 등반하다가 선등자가 4피치 종료지점을 출발한 후 5피치에 거의 도착할 무렵 위에서 낙석이 떨어지면서 등반로프를 치는 바람에 로프가 절단 되면서 선등자가 그대로 밑으로 추락했다는 것이다.

“…………………”

우리는 아무도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라고 물어보지 못했다. 물어보나마나 뻔한 이야기다.
5피치면 땅에서부터 약 300m정도 나무 한 그루 없는 빤빤한 오버행 바위벽인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도 우리와 같이 바위를 사랑하고 얼음을 즐겼을 클라이머였을 텐데.
또 우리도 언제라도 그런 사고를 안 당한다는 보장도 없는데,
우리도 내일부터 저 코스를 다시 오르려고 하는데… 우울한 마음과 함께 두려운 생각이 든다.



그런 이유도 모르고 홀백을 며칠씩 매달아놓고 안 치운다고 욕을 해댄 것이 너무 미안하고 죄송할 뿐이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그 클라이머에게 사죄와 함께 명복을 빈다.
부디 저 세상에서는 좋아하시는 바위, 얼음 마음껏 즐기시고 행복한 시간 보내소서…

 


망원경으로 다시 자세히 살펴본다.
저 위 6피치 Black Tower 구간이 이름 그대로 시커먼 페인트칠을 해놓은 것 같이 시커멓게 우뚝 솟아있다.
엄청난 크기의 바위벽의 위용에 몸이 움츠러든다.

 


그러나 어쩌랴.
이미 출사표는 던졌다. 죽으나 사나 이판사판이다.
에이 C8 한번 해보는 거지 뭐… 속으로 은근히 오기를 부려본다.
이 나이에 살만큼 살았는데 좋아하는 바위 하다가 죽으면 영광이지 뭐…
겉으로는 태연한 척 대범한 척하지만 사실 속으로는 바짝 쫀 것이 사실이다.

위에 걸려있던 사고팀의 홀백이 치워진 것은 밑에서 확보를 보던 다른 대원이
오늘 아침 우리와 친숙한 톰 아저씨에게 양해를 구하고
우리가 픽스해 놓은 줄을 이용하여 오전에 내렸다는 사실도 이때 알게 됐다.
엘 캡에서도 비교적 인기코스인 조디악에 등반팀들이 별로 없어서 이게 왠 떡이냐 좋아했던 우리였으나, 며칠 전 사고를 알고 있던 서양팀들이 기피한 것도 그제서야 알게 된 것이었다.

우리는 베이스캠프로 돌아와 우울하고 찝찝한 마음에 코브라 맥주만
여러 캔 비워버렸다.

 


 

 

6월 11일 (제 6 일, 등반 둘째 날)

 

4시 기상, 5시 출발이다. 오늘도 예외 없이 강인철 이사가 엘 캡 밑까지 차로 데려다 준다.

 


전에 3피치까지 깔아놓은 줄로 차례차례 저깅을 한다.
몸이 벽에서 5m는 떨어져서 발이 바위벽에 닿지 않는다.
호흡과 저깅동작을 리드미컬하게 해 보지만 역시 오버행 외줄 저깅은 만만치가 않다.
가뿐 숨을 몰아쉬면서 3피치에 도착했다.

 



조디악 코스는 이제부터가 문제다. 3피치에서 4피치는 직선으로 되어있지 않고 왼쪽방향으로 45˚쯤 옆으로 나 있기 때문에 4피치에서 줄을 내리면 3피치 종료지점에는 약 10m쯤 떨어지게 되기 때문에 후등자들은 10m 정도를 허공으로 날아야 한다.

100m 절벽 위에서 발이 바위에 닿지도 않는 허공을 10m나 날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오금이 저려온다.
그러나 그 방법 밖에는 없다. 나 혼자 해결해야 한다.

아랫배에 힘 꽉 주고 눈감고 뛰어내린다.

내 몸무게 때문에 로프가 출렁거린다.

 

두려움 때문에 저깅속도가 빨라진다.
그럴수록 숨은 더 가빠지고 윗 주마를 충분히 위로 올리지 못하고 중간에서 걸리고,
마음만 급했지 저깅 자세도 엉망이다.
이러면 안되지 하면서 로프를 끌어안고 잠시 쉬면서 마음을 다잡아본다.
바람이 살랑살랑 부니까 몸이 그 자리에서 뱅뱅 돈다.
온 힘을 다해 4피치에 도착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이중확보를 한 다음
잠금 카라비너의 잠금장치도 확실한가 확인한다.
그때 정호가 수통을 건네며 물을 마시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까 오늘 하루 종일 행동식을 하나도 안 꺼내 먹었다.

이제서야 초콜릿 한 개를 우물거리고 사탕 한 개를 입에 넣는다.
“어휴… 내 이런 등반 국내에서는 해본 적도 없는데…”라고 중얼거리며 여유를 좀 찾는다
.

 

저 사고가 난 미국팀의 주인 잃은 끊어진 로프가 절단면이 너풀거리며 아직도 매달려 있다.
다시 한번 명복을 빈다.

 



5피치는 주회 차례다. 예전 루트맵에는 5피치와 6피치가 분리되어 있지만,
새 루트맵에는 5, 6피치가 통합되어 그냥 5피치로 되어있다.
그러니까 주회는 예전으로 치면 두 피치를 한꺼번에 하는 셈이다.

 


주회가 신중하게 출발한다. 작은 키에 위의 리벳이 안 닿는지
레더 1단까지 올라서면서 바둥바둥 와이어 행거에 레더를 걸려고 안간힘을 쓴다.

 


이번 등반을 오면서 주회의 컨디션은 엉망이었다.
주회는 지난 겨울 동계 하프돔 원정이 끝난 후 악화된 치루 수술을 얼마 전에
받았는데 아직 완쾌되지 않은 상태였다.

베이스캠프에서도 텐트에서 혼자 쪼그리고 앉아 물휴지로 대강대강 해결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여성용 생리대까지 준비해 왔으니 컨디션이 엉망인데도 불구하고 자기의 선등 차례에서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앞으로 나선 것이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주회의 등반속도가 조금 느리다.
신중하게 천천히 앞으로 나아간다.

 

주회가 등반하는 동안 나는 확보줄에 매달려서 이곳 저곳을 둘러보는 여유를 가져본다.
우리 팀 옆으로 어느 서양인 클라이머가 단독으로 등반하는 것이 보인다.
코스는 로스트 인 아메리카인지 제냐타 몬다타인지는 확실히 모르겠다.

말이 단독등반이지 이 큰 벽에서 동료 한 명 없이 외롭게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된다.
단 한치의 실수도 용납될 수 없다.
조그마한 실수는 곧 죽음이다. 선등, 회수, 홀링을 모두 혼자서 해야 된다.
그것도 하루가 아닌 4, 5일을 계속해야 하니 그 체력소모가 엄청날 것이다.

 


은근히 그 클라이머에게 존경심이 생긴다.
우리는 그에게 격려의 손을 흔들어준다. 그도 잠시 동작을 멈추고
우리에게 손을 흔든다.
그리고 카메라를 꺼내 사진도 찍는다.
나는 이번 등반에 망치 한번 안 잡아봤지만
무슨 개선장군이라도 된 것처럼 손가락으로 브이자를 그리며 으쓱댔다. 그가 뭐라고 뭐라고 소리를 지른다.
영어인 것은 틀림 없는데 바람에 날려서 뭐라는 소린지 잘 모르겠다.

하기야 바로 옆에서 잘 들리게 얘기해도 못 알아 듣기는 마찬가지이지만…
6피치는 동준이가 선등이다.
이른바 Black Tower 구간이다. 시간은 오후 3시를 넘어서고 있다.

이 구간은 A3 구간으로 하켄, 앵글 등을 때려 박고 오르는 구간이다.
동준이는 잠시 머뭇머뭇 하더니 확보를 보고 있는 정호에게 “소우드 앵글하고 나이프 하켄 좀 큰 걸로 올려줘” 한다.
조금 후에 동준이는 타워 뒤로 들어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확보물 박는 소리만 들린다. 탱 탱 팅 팅… 버드빅 박는 소리 같다.
시간은 5시 30분을 가리킨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6피치에 도달할 것 같다.
해 떨어지기 전에 포타렛지 펴고 침낭 펴고 저녁 먹고 해야지 어두워지면 모든 행동이 위험하다.

 



우리가 인수봉 밑 21 야영장에서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다가 술김에 “야! 우리 술도 깰 겸 야등 한번 하자!” 하고 호기를 부린 적이 여러 번 있었지만
이곳 엘 캡에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목숨이 여러 개 된다면 몰라도 앞으로의 길이 어떻게 나타날지도 모르는 초행길에다 체력도 인수봉에서의 등반과는 비교도 안된다.

 



오후 7시쯤 된 시간에 “완료” 소리가 들린다.

 


오늘 우리는 새벽 5시부터 악명 높은 너덜지대를 어프로치하고 벽 밑부터 이곳까지 허공 저깅하고 홀링하고 시간상 14시간이나 등반을 한 것이었다.
무척 피곤하다. 지상으로부터 300m 위에서 포타렛지 치고 등반 첫날을 보내지만 낭만을 즐길 겨를도 없이 알파미 몇 숫갈을 뜨고 그대로 골아 떨어진다.

 


6월 12일 (제 7 일, 등반 셋째 날)

 



새벽 4시쯤에 눈이 떠진다. 다른 대원들의 인기척이 없다. 혹시 곤히 자는 잠을 깨울까 봐 누운 채로 가만히 있는다. 많이들 피곤한가 보다.

 

오늘의 계획은 7피치 정호 선등, 8피치 주회 선등, 9피치 동준 선등으로 세 피치를 하기로 했다.

 

어제 저녁 포타렛지를 설치할 때 장소가 마땅치 않아 나란히 펴지 못하고 위에 한 개에는 정호와 주회가 자고, 바로 그 밑에 솔로포인트에 대인이가 자고, 동준이와 나는 맨 밑의 포타렛지에서 잤었다.

 

아침을 대충 해결하고 장비를 착용하고 출발준비를 한다. 시간은 오전 7시, 그때 동준이가 뒤가 마려운가 보다. 아무래도 좀 뽑아내고 가야겠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나도 뒤가 마렵다. 우리 둘은 포타렛지 양쪽 끝에 서로 마주보고 쭈그리고 앉아 응가를 하기 시작한다. 나는 그런대로 몇 덩어리 해결했는데 동준이가 아직 해결을 못한 것 같다. 자세도 엉거주춤하고 마주보고 앉아 상대편 힘주느라고 인상 쓰는 꼴을 보니 잘 안 되는 것 같다. 나는 해결했다고 벌떡 일어나면 포타렛지가 흔들려서 동준이가 더 어려울 것 같아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다. 동준은 결국 해결 못하고 그대로 일어선다. 7피치를 향해 정호가 선등으로 출발한다. 정호의 등반실력은 정평이 나 있으니까 믿음직스럽다. 그런데도 신중하다. 어느 지점에서는 확보물 설치가 마땅치 않은지 주춤주춤하면서 “언놈이 조디악이 쉽다고 했어? 아이고 미치겠네” 하면서 투덜거린다.

“야! 야! 엄살부리지 말고 빨리가! 허리가 뿌러질 것 같다!” 동준이가 한 마디 던진다. 이곳은 스텐스가 없어 빌레이 시트가 필수인데 동준이는 빌레이 시트 없이 그냥 매달려 있던 터였다.

그때 무전기가 울린다. “충호형 나오세요, 충호형 나오세요”
“이충호 카피”

“충호형, 형한테 선물할 것이 있는데 잠시 기다리세요”

저 밑 엘 캡 브릿지에서 강인철 이사가 보내는 무전이다.

 

잠시 후 무전에서는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 중에서 <별은 빛나건만>이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우아한 테너로 흘러나오는 것이 아닌가?

오 돌치 바치오 랑귀데 까레체 멘트리오 프레멘테~~~

 

아!!! 엘 캡의 바위벽에 매달려서 이런 멋있는 오페라 아리아를 듣다니… 내가 평소에 애창하는 곡이다. 가슴으로부터 울컥하는 감동이 밀려온다. 인철이가 저 밑 브릿지에 아침 일찍부터 나와서 오늘쯤이면 체력이 많이 떨어졌을 나를 응원하기 위해 MP3로 들려주는 것이다.

아우들아 고맙다. 너무 너무 고맙다.

8피치는 주회가 선등할 차례다. 상당한 무게의 장비를 착용하고 출발한다. 이곳은 캠훅과 너트, 작은 캠들이 많이 필요한 구간이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별안간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주회가 뒤로 벌렁 자빠지면서 8m 정도를 그대로 추락해 버린다. 아찔한 순간이다. 너무 놀랐다. 주회는 거꾸로 처박혀 있다가 주섬주섬 다시 일어난다. 확보를 보고 있던 정호가 근심 어린 목소리로 “주회야, 괜찮냐? 팔 다리 한번 움직여 봐! 그리고 너 내려와서 좀 쉬어라, 내가 갈께.” 나머지 대원들은 너무 놀라서 아무 말도 못하고 주회의 행동만 주시한다. 다시 일어난 주회가 “응, 괜찮은 것 같아. 그냥 계속 갈께” 하면서 캠 하나를 꺼내 쑤셔 박는다. 나중에 주회의 얘기를 들으니 C3가 터지면서 그 밑에 있던 에일리언이 잡아줬단다. 그리고 무서운 것보다 쪽 팔리고 오기가 생기더란다.

나 이런 쓰발놈 좀 보게나. 쪽 팔리긴 뭐가 쪽 팔리냐. 안 다친 것이 장땡이지. 이곳에서의 부상은 본인에게는 물론 팀 전체에게 치명적인 위험이 된다. 구조받을 수도 없고, 뒤로 후퇴할 수도 없다. 오로지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한번 추락한 주회의 행동이 더욱 신중해진다. 등반속도가 많이 느리다. 시간은 벌써 5시를 넘어서고 있다. 홀링하고 포타렛지 치고 하려면 오늘 계획했던 9피치까지 가기에는 시간이 없다. 그냥 8피치에서 두 번째의 밤을 보내기로 한다.

후배들이 포타렛지 설치작업을 하는 동안, 나는 맨 구석 볼트에 확보줄을 최대한 당겨서 개구리 같은 자세로 벽에 찰싹 달라붙어 후배들이 작업할 공간을 최대한 넓게 해 주는 것밖에 할 일이 없었다.

 



우리가 가지고 간 포타렛지는 국산 백마 제품으로 설치도 1, 2분 밖에 안 걸리고, 좁은 공간에서 5명이 바글대는 것보다 작업공간을 좀더 넓게 해주는 것이 도와주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팀 분위기가 축 가라앉아 있다. 이때 대장인 정호가 입을 연다.
“대인아, 비상용으로 가져온 럼주, 그거 꺼내라!” 술잔도 없이 병뚜껑으로 한 잔씩 돌린다.
그제서야 조금씩 활기가 돌며 한마디씩 한다.
주회는 본인 때문에 오늘 계획한 9피치까지 못 간 것이 미안한 것인지 아무 말도 없이 그저 묵묵히 앉아있다.
그때 동준이가 술잔을 건네면서 주회를 위로한다. “주회야, 신경쓸 거 없다. 니가 오늘 8피치 예정대로 끝냈으면 그 다음은 조디악에서 제일 크럭스인 니플 피치를 내가 해야 하는데,
나도 그곳에서 분명히 헤맬 텐데……. 그게 그거다! 신경 쓰지 마라!”

참으로 산사나이들의 진한 우정이요 멋있는 팀웍이다. 이런 극한 상황에서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정말로 눈물겹다.

침낭에 누우니 오늘이 음력으로 보름쯤 됐나 보다. 둥근 달이 우리를 포근히 비춰준다.

 

6월 13일 (제 8 일, 등반 넷째 날)

오늘은 조디악의 상징이기도 하고 크럭스라고도 할 수 있는 니플(Nipple) 피치를 지나는 날이다.
니플은 우리말로 젖꼭지라는 뜻으로 멀리서 보면 마치 풍만한 여인의 유방처럼 생겼는데
젖꼭지 부분하며 그 생김새가 비너스상보다도 더 정교해서 조물주의 위대함에 감탄을 자아내는 곳이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 뒤로 클라이머들의 간담이 서늘할 정도로 까다롭고 애매한 곳이기도 하다.
침니라고 하기엔 너무 좁고 크랙이라고 하기엔 넓은, 그래서 캠 4, 5, 6호를 번갈아 돌려막기 해야 하고 정신을 집중해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어제 대인이가 예정보다 1피치 못한 것까지 합쳐 9피치부터 12피치까지 혼자서 네 피치를 하겠다고 의욕을 보인바 있다.

대인이가 역시 능숙한 솜씨로 오버행 부분도 쉽게 쉽게 나아간다.
젖꼭지 부분을 지날 때 잠시 주춤하면서 유심히 살펴본다.
나는 속으로 ‘옳지, 너도 남자이니 애무 좀 해주고 가려나 보다’ 했다.

하지만 대인이는 크랙 속의 확보물 설치에만 신경을 쓰는 것 같다.

그리고 곧 니플 부분인 크럭스를 넘어간다.

 


아니! 저런 목석 같은 녀석이 있나…
수천 년을 한 곳에서 있으면서 등반 시즌 때에만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젊고 건강한 클라이머들이 한 번쯤 애무해주고 가면 얼마나 좋아할텐데…

아무리 이름이 대인이라고는 하지만 여인들에게 너무 무관심한 거 아냐?

지가 무슨 서산대사라고…

 

내 차례는 애석하게도 니플에서는 왼쪽으로 10m쯤이고 벽에서는 5m쯤 떨어진 오버행이니 젖무덤조차도 손이 안 닿았다.

오히려 잘 됐는지도 모른다.
등반도 제대로 못하는 늙은 놈이 무지하게 밝힌다고 두고두고 동생들에게 술안주감이 안 될 테니 천만다행이다.

 



10피치에서 쉬고 있을 때다. 별안간 위에서 시커먼 물체가 밑으로 떨어진다.
깜짝 놀라 자세히 보니 제비다.
이곳 바위틈에 둥지를 짓고 사는 제비들이 자기들 영역을 침범했다고 시위를 하는 것 같다.

무지하게 빠른 속도로 밑으로 내려간다.
처음에는 우리가 뒤에 차고 있는 장비를 떨어뜨린 줄 알았다.
안 그래도 우리는 이곳까지 오면서 타이오프 슬링 한 뭉치,
매트리스 2개, 캠 2개, 주마 1개를 떨어뜨렸다. 언제 떨어뜨렸는지도 모른다.
전체가 오버행이니 떨어지면서 바위에 부딪히는 소리도 없다.
그냥 저 멀리 허공으로 날아가 버린다.

 

오늘의 예정은 12피치 땅콩렛지였지만
중간에 줄이 꼬여서 잠시 시스템이 엉키는 바람에 시간을 소모해서 11피치에서 벽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기로 한다.

이제는 땅이 그립다. 땅을 밟고 싶다.

 


포타렛지를 펴고 저녁을 먹은 후 침낭을 펴려는데 정호가 나에게 벽 안쪽 자리를 양보한다. 포타렛지 바깥쪽에서 자다가 혹시 몸을 뒤척이다 발이나 몸이 포타렛지 밖으로 떨어질까 봐 세심한 배려를 해준 것이다.

물론 이중으로 확보는 했지만 땅으로부터 500m나 되는 높은 바위벽에서 본인도 그런 위험을 당할 수도 있는데 나를 먼저 배려한다.
너무도 고마운 마음씀씀이에 가슴이 울컥해진다.

 


좁은 공간에서 침낭에 몸을 쑤셔 넣으려고 움찔움찔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정호가 “앗! 이게 뭐야?” 하고 소리를 친다.
위의 포타렛지에서 동준이가 잠자기 전에 마지막으로 소변을 보려고 빈 생수병에 정조준하여 일을 보다가 포타렛지가 움직이는 바람에 조준이 잘못되어 그대로 밑에 있는 정호의 머리에 오줌을 쏟아낸 것이다.

“우쒸!!! 아! 지린내…….”

자리를 안 바꿨으면 내가 당하는 건데 그랬다.

 


우리는 소변도 벽 아무데나 누지 않고 무겁더라도 빈 병에 담아가지고 올라간 정말 양심적인 클린 등반대라고 자부한다.

 


침낭에 몸을 누이니 내일은 정상이다,
땅을 밟을 수 있다는 생각에 잠이 오지 않는다. 달은 어제보다도 더 크게 완전히 동그랗게 비춘다.
한라산 장구목에서 실버원정대 동계 심설훈련 때 눈사태로 대원 전원이 눈에 파묻혔다가 10분만에 간신히 구조되어 죽음의 문턱에서 구사일생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갑자기 손주녀석이 보고 싶어진다.
아들이 결혼 8년이 되도록 애가 없어 고심하다가 간신히 얻은, 이제 태어난 지 7개월 밖에 안돼 방바닥을 엉금엉금 기어 다니는 손주녀석이 보고 싶다.

 


마누라도 보고 싶다. 달력에 빨간 글씨 날이면 어김없이 큰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서도 불평 없이 밑반찬이며 찌개거리까지 챙겨 주고 또 용돈이 필요할 때면
“나는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도 꼭 당신하고 결혼할 테야”
라고 사탕발림할 때에도 “에이 징그러. 입술에 침이나 바르고 말해”
하면서도 손에 용돈을 쥐어주는 착하디 착한 마누라가 보고 싶다.

 



6월 14일 (제 9 일, 등반 다섯째 날)

 



오늘은 정상이다. 이제 땅을 밟을 수 있다.
피곤하기는 하지만 팀에 활기가 돈다. 12피치 땅콩렛지까지는 조디악에서 가장 긴 160 피트이다.
빨리 정상을 밟고 싶은 욕심에 우리 팀의 에이스 대인이가 나선다.
우리는 가끔 우스개 소리로 우리가 아쉽고 필요할 때에는 “용병을 투입하자”라고 하면서 팀 막내이며 에이스인 대인이에게 의지하곤 했다.

 

땅콩렛지에 도착하니까 바위턱 위에 어느 팀에서 놔두고 간 건지 노란 오렌지 주스 같은 것이 놓여있다.
그러나 꼭 오줌색깔인 것도 같고 언제 놓고 간 건지도 몰라 손도 안대고 그대로 놓아둔다.

 


13피치는 동준이 선등이다.
출발하고 조금 후에 “왠 찬바람이 이렇게 세게 불지?” 하면서 주춤주춤한다.

바위와 바위 벽 사이로 골바람이 몰아치는 것이다.

우리가 북한산 오를 때 위문에서 시원하게 땀을 식히곤 했는데
그것보다도 더 세게 불어온다. 정상이 가까워 올수록 바람이 더욱 세지는 것이다.
여기가 ER 전용학 강사가 줄 처리를 잘 해야 한다고 충고해 준 바로 그곳이다. 대인이가 세 번째로 올라 홀링줄을 픽스하니까 예비용 저깅줄이 사정없이 홀링줄을 감아버린다.
바위벽 사이에서 불어온 바람이 반대편 벽에 부딪히면서 빙빙 돌면서 휀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대인이가 무전으로 소리친다. “형님, 줄이 엉켜서 도저히 안되겠어요.
홀링을 먼저 할 테니까 나머지 줄 스위벨에 매다세요.”

 


밑에는 나와 주회 둘밖에 없다. 그리고 줄은 이제 한 가닥밖에 없다.
내가 출발하면 주회 혼자만 남는다.
이런 거벽등반에서 라스트는 정말 외롭다.
대원들이 모두 오르고 나만 내팽개쳐진 것 같고,
외롭고 고독한 심적 부담은 선등자보다도 더하다.
선등자는 그나마 확보자와 필요한 장비를 요구하는 등의 대화나 하지만
라스트는 대화상대도 없다. 정말 하기 싫은 임무가 라스트이다.
나도 지난 겨울 토왕폭 등반 때 겪어봐서 잘 안다.
그걸 주회는 묵묵히 해내고 있다.

 

내 차례다.

주회의 확보를 받으며 서서히 트레버스한다.
줄이 수직으로 된 후 저깅을 시작한다.

저깅을 시작한지 조금 후 예의 그 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한다.
내 몸이 빙빙 돌기 시작한다. 한곳에서만 도는 것이 아니라 지름 5m 정도의 원을 그리며 빙빙 돈다.

“오 마이 갓!” 죽기 살기로 저깅한다.
마치 내 몸이 아이들 줄넘기 놀이할 때 줄을 빙빙 돌리는 것처럼 사정없이 돌아간다.
몸이 벽 쪽만 보고 돌았으면 좋겠는데 사정없이 360도 회전하면서 빙빙 돈다.

 



“오 마이 갓!”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 오스왈드에게 저격당한 후 재클린 여사가 케네디의 피 흐르는 머리를 무릎에 누이고
‘오 마이 갓’을 외쳤다던가? 내가 인수봉 밑 21 야영장이나 가래비 빙폭 밑에서 그곳 산신령님께 막걸리 한잔 올리며 안전산행을 기원한 적은 있지만,
언제 이곳 산신령님께 술 한잔 올린 적이 있는가? 그래도 할 수 없다. 유 우~~~ 세 차~~~

갑자 유월기묘삭~~어쩌구 저쩌구… 잘 못 알아 들으실 테니, ‘오 마이 갓’이다.

 

죽기 살기로 저깅한다.
밑은 보기도 싫다. 위만 쳐다본다.

 


그런데 이거 참 사람 죽을 맛이다.
위를 쳐다보니 로프가 그 동안 바위턱에 쓸려서 겉표면이 살짝살짝 보풀이 나 있다.
그걸 보니까 이렇게 로프가 왔다 갔다 빙빙 돌면 바위턱에 쓸리면서 절단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4피치 미국 팀의 사고 로프가 오버랩된다.
밑에는 독사들이 우글거리고 위에서는 새앙쥐가 동아줄을 갉아먹는,
동화책에 나오는 그 장면과 꼭 같다. ‘젖 먹을 때 힘까지 쓴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말인 것 같다. 정말로 죽기 살기다.

 


위에서 대인이가 여유 있는 목소리로 “형님, 천천히 저깅하세요” 한다.
‘야 이 미친 놈아! 지금 로프가 끊어지게 생겼는데 천천히 저깅하라고?’ 생각이 그렇지 말은 밖으로 나오지도 않는다.
입이 바싹 말라서 침 넘기기도 어렵다.
그 때 헬멧에 뭔가가 쿵 하고 와 닿는다. 똥통이다.
우리는 홀백 맨 밑에 똥통을 달고 다녔던 것이다. 똥냄새가 확 풍긴다.
그래도 좋다. 이제 다 왔다는 증거다.

 


간신히 확보지점에 도착하니 대인이가 내 확보줄을 대신 걸어준다.
휴~~~ 잠시 숨을 고르고 주위를 보니 로프가 꺾이는 바위턱에 대인이가 덕테이프를 덕지덕지 발라놓은 것이 보인다.

정신이 제대로 돌아온 후 나는 속으로 결심했다.
이제 집에 돌아가면 빅월장비 몽땅 내다버리고 이젠 두 번 다시 이런 짓거리 안 하겠다고 다짐한다.

 


이런 내 속마음을 대인이가 알아차렸나?
싱글싱글 웃으며 “형님, 내년이 형님 칠순이신데 내년에 저쪽 노즈코스 프리로 칠순 기념등반 한번 하시죠?” 한다.
나는 대인이에게 눈을 흘기며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14피치는 정호 차례다. 원래 14피치에서 정상까지는 한 사람이 빠르게 해치우는 것이 좋지만
정호는 정상등정의 영예를 주회에게 양보한다.
그 동안 몸 컨디션이 안 좋은데도 불구하고 선등과 라스트의 임무를 묵묵히 수행한 주회에게 정상등정의 기쁨을 먼저 맛보게 해 주려는 배려다.

 



주회가 정호로부터 장비를 인계받고 마지막 15피치를 출발한다.
우리는 곧 정상에 도착해서 땅을 밟을 수 있다는 기쁨에 피곤도 잊고 주회의 정상 도착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주회가 뒤로 벌렁 뒤집히면서 5m 정도를 추락한다. 몸이 뒤집힐 때 신발 한 짝이 벗겨지면서 우리 머리 위를 날아서 저 멀리 허공으로 한없이 떨어진다.

 



너무 놀랬다. 이제까지 아무 사고도 없이 여기까지 와서 이제 30m만 오르면 정상인데 이게 왠 일인가.
그런데 하늘이 도우셨는가? 주회는 아무 부상도 없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엘 캡 산신령님 감사합니다..
신발 한 짝이 벗겨진 주회가 하는 수 없이 도로 내려온다.
또 다시 대인이가 투입된다.

 

대인이가 등반하고 있는 동안 정호가 대인이의 빌레이를 보면서 주회에게 슬슬 농담을 건넨다.
“얌마! 니가 무슨 박지성이라고 오버헤드 킥을 날리냐?
글구 오버헤드 킥을 하려면 공을 차야지 왠 신발짝을 날리냐?
상대편 골키퍼가 놀래 자빠지겠다~”
하면서 놀린다. 주회는 무안한지 아무 대꾸도 없이 머리만 긁적인다.

 


조금 후 대인이에게서 “완료!” 라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는 “와~~” 소리와 함께 박수를 쳐 댄다.

 

이때 동준이가 내게 “형님이 먼저 올라가세요” 한다
. 다들 땅을 빨리 밟고 싶은 심정은 마찬가지고 또 피곤한 것도 다 마찬가지일 텐데도 나에게 정상에서 땅을 밟고 쉬게 해 주려는 눈물겨운 배려다.

 



나는 염치도 없이 두 번째로 정상에 서는 기쁨을 맛봤다.
그 동안 얼마나 간절히 땅을 밟고 싶었는지 모르지만 막상 정상에 서니 특별히 별다른 감흥이 없다.
그 동안 참고 있던 오줌이 마렵다.
숲 속에 들어가서 시원하게 해결하고 그때서야 “이충호 정상도착”이라고 무전을 날린다.

 


다른 코스로 등반 중이던 ER 동문 후배들로부터 “형님, 축하드립니다”,
“형님, 대단하십니다” 하며 축하의 무전소리가 들린다.
그때서야 내가 엘캡 정상에 섰구나 하는 감동에 잔잔히 가슴이 뛴다.
저 멀리 하프돔 정수리에 흰 눈이 아직도 남아있고, 그 뒤로 시에라 네바다 산맥이 쭉 펼쳐져 있는 것이 보인다.

 



정호야, 동준아, 주회야, 대인아 고맙다.
정말 정말 고마웠다.

 

< 오양의 외출팀> 만세! 만세! 만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