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설
입동이 지나면 가난으로 배회하던
용두산 뒷길 골목 끝의 낡은 술청을 찾아
우리는 세월에 등밀려 흐느적거리며 가지.
시간이 때에 절어 겸이의 얼굴만큼
반들거리는 쪽탁자 사이하고,
도시에서도 토왕을 꿈꿀 수 있다고.
말라비틀린 목구멍 찢어발겨진 노가리,
산꾼의 영혼을 닮은 싸한 소주,
하루가 그렇게 씻겨 내려갔다.
뿌옇게 김이 서리는 창 진눈깨비라도 뿌리면
삐꺽이는 입구 미닫이 숨을죽이고
탁자 모서리 쌓여 가는 빈 병 사이로
설악의 눈바람이 들렸다.
토왕을 빼어 닮은 불빛 아래의
소주병 그리고 이내 번득이는 픽켈,
폭죽처럼 튀는 靑氷의 파편들
절겅이는 금속성 장비 환청으로 울렁이는 가슴.
전설이 염원의 끝머리에 설 때면
창밖으로 하얀 만다라 우리들의 자유를 축복했다.
그러나 오래전 또 다른 전설을 찾아 악우들은 떠났고
토왕은 스스로를 깨뜨려 설악동 저자거리를 지나
쌍천으로 쌍천으로 매일 아침해를 던지는 동해로 갔다.
-권경업
<산정노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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